3월 19일은 어떤 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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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32회 작성일 23-03-2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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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2(2023)년 3월 19일 《통일의 메아리》

3월 19일은 어떤 날인가

이 시간에는 《3월 19일은 어떤 날인가》,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주체82(1993)년 3월 19일, 력사의 땅 판문점에서는 인류사가 지금껏 알지 못한 사변이 펼쳐졌습니다. 신념과 의지의 화신인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리인모동지가 판문점분리선을 넘어 꿈결에도 그리던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긴것입니다.

이날 민족의 장한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수십리 연도에 꽃바다를 펼치고 《불사조 리인모!》를 목청껏 웨치던 환영군중의 목소리는 오늘도 우리의 귀가에 어제런듯 쟁쟁히 울려옵니다.

40여년이라는 기나긴 나날 적구에서 혁명적절개와 지조를 지켜 굴함없이 싸운 리인모동지가 군중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혁명의 수도 평양에 들어서던 그때의 감격을 어찌 잊을수 있겠습니까.

34년간 감옥생활을 하면서 페인이나 다름없이 된 리인모동지였습니다. 보통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고통과 시련속에서 눈물조차 말라버렸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꿈결에도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기는 순간 리인모동지의 두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얼마나 밟고싶었던 땅이고 얼마나 안기고싶었던 어머니조국의 품이였습니까.

아마도 인생의 극적전환이라면 지옥행이 락원행으로 바뀌는 그것을 두고 하는 소리일것입니다.

바로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지옥행을 락원행으로 바꾸어주신분은 다름아닌 우리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이시였습니다.

리인모동지가 생존하여 원쑤들과 싸우고있다는 기적같은 소식이 전해진것은 그의 수기가 남조선의 한 출판물에 실린 1989년이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십년간의 모진 옥중고초를 당하면서도 당과 혁명앞에 다진 맹세를 끝까지 지켜 신념과 지조를 조금도 굽히지 않은 리인모동지가 남녘땅에서 아직도 정신육체적고통을 겪고있는데 대해 가슴아파하시였습니다. 혁명전사 한사람한사람을 천금보다 귀중히 여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의 투쟁을 높이 평가하시며 그를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해 온갖 로고와 심혈을 기울이시였습니다. 이 나날 우리 수령님께서와 장군님께서 리인모동지를 생각하시며 지새우신 밤은 그 얼마였는지 모릅니다.

리인모동지의 귀환을 위한 대책이 적극적으로 취해지던 주체81(1992)년 9월 6일이였습니다.

이날 《아시아의 평화와 녀성의 역할》에 관한 제3차 평양토론회에 참가한 대표들을 만나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표들속에 리인모동지의 딸 리현옥동무가 있는것을 알게 되시였습니다. 리인모동지가 두고간 딸, 이제는 벌써 어머니가 된 그를 보시는 순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잃었던 혈육을 다시 찾으신듯 이윽토록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였습니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등을 두드려주시며 너의 아버지를 아직 데려오지 못하여 안됐다고, 우리 꼭 아버지를 데려오자고 절절하게 교시하시였습니다.

혁명전사를 위해서라면 천리길도 헤쳐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의리와 동지애의 풍모를 이어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의 귀환을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밀고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남측대표단과 회담을 할 때마다 리인모동지를 데려오는 문제를 상정시키도록 하시였으며 세계의 량심을 불러일으켜 리인모귀환투쟁을 벌리며 안해와 딸이 그에게 편지를 보내여 용기를 내게 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어느해 정초에는 올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리인모를 꼭 데려와야 한다고, 그의 생명이 위급하다는데 그냥 남쪽에 있으면 죽을수도 있으니 빨리 조국에 데려다 살려야 한다고 절절히 교시하시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처자와 만나 살면서 손자, 손녀를 앞세우고 모란봉에도 오르고 평양의 거리를 거니는 모습을 보아야 마음을 놓겠다고 이르시였습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인정이 그리운 그에게 해외의 인사들과 동포들이 련일 찾아가 고무격려해주었고 세계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리인모귀환을 요구하는 운동이 활발히 벌어졌습니다. 여기에도 리인모동지의 귀환을 위해 그토록 마음쓰신 우리 장군님의 자애로운 손길이 어리여있었습니다.

리인모동지가 돌아온 시기로 말하면 핵문제를 둘러싸고 우리와 적들사이에 치렬한 대결이 벌어지고있던 때였습니다. 적대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압살책동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가 선포된 그 준엄한 시기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를 데려오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작전을 펼치시였습니다.

아무리 정세가 긴장하고 준전시상태라고 하여도 리인모동지를 데려와야 한다. 우리를 믿고 30~40년을 싸워온 동지인데 우리가 그를 구원하지 않으면 누가 구원하여주겠는가.

위대한 장군님의 이 교시를 새겨안으며 일군들은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그이의 고결한 혁명적동지애와 의리의 세계를 다시금 깊이 느끼였습니다.

사람들은 리인모동지가 조국으로 돌아올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를 위하여 얼마나 마음쓰시였는가 하는것을 다는 모를것입니다. 리인모동지의 귀환을 국가적행사로 잘 조직할데 대해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느라고 밤을 꼬박 새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판문점분리선을 넘어설 때 병약한 그의 신변에 있을수 있는 여러가지 정황에 대처한 모든 조치를 취해주시였습니다.

천연암반도 녹여내는 절세위인들의 그 뜨겁고 열렬한 동지적사랑과 은정이 있어 마침내 리인모동지는 살아서는 안길수 없다고 생각했던 조국, 꿈결에도 그리던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였습니다.

그 어느 영웅호걸도 받아본적 없는 열광적인 환영속에 조국의 품에 안긴 그를 보며 세상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당시 언론들은 이 광경을 보도하며 인권유린에 대한 인도주의의 승리, 반통일책동에 대한 통일로선의 빛나는 승리라고 찬양하였습니다.

정녕 그렇습니다. 신념과 의지의 화신 리인모동지가 조국의 품에 안긴 3월 19일은 단지 그가 판문점분리선을 넘어 사랑하는 처자가 있는 꿈결에도 그리운 고향,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온 날만이 아닙니다.

그날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인간에 대한 증오를 이긴 날이며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긴 력사의 날입니다.

 

 

지금까지 《3월 19일은 어떤 날인가》,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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