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설명순 13/0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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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827회 작성일 24-05-13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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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담화 

KCNA  Naenara (Kr)

작곡가 설명순

Date: 13/05/2024 | Source: Naenara (Kr) | Read\original version at source

우리 나라의 음악명인들가운데는 수많은 명곡을 창작하여 주체음악예술발전에 큰 기여를 한 조선인민군협주단 작곡가였던 김일성 상계관인 로력영웅 인민예술가 설명순(1936. 5-2012. 7.)도 있다.

화선악사의 처녀작

설명순은 평양시 동대원구역 신리동에서 가난한 로동자의 맏아들로 출생하였다.

전쟁(1950. 6-1953. 7.)시기 미제의 야만적인 폭격으로 온 평양시가 페허로 되고 그의 집도 형체없이 불타버리는것을 목격한 그는 17살 나던 주체42(1953)년 1월 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 전쟁기간 그는 어느한 곡사포려단에 배속되여 통천해안방어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웠다.

강원도 고성군 까치봉고지에서 전승을 맞이한 그날 설명순은 전우들과 승리의 축배를 나누며 영원히 군복을 벗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어릴적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곡사포려단 군악소대 악사로 되였다.

어느날 그가 속한 군악소대는 려단이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다는 련락을 받고 마중을 나갔다. 풍년이 든 가을날의 황금해빛을 받으며 온 려단이 활기에 넘쳐 김이 오르는 가마마차와 함께 돌아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였다. 창작적흥분에 휩싸인 그는 자기가 화고트의 연주를 담당했다는것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곡을 써나갔다.

덜렁덜렁 달려오는 마차소리, 채찍을 후리는 가마마차수의 쩌-쩌- 말모는 소리, 그 소리에 부드럽게 융합되여 들판으로 울려가는 취사원과 병사들의 명랑한 웃음소리⋯

불과 30분만에 곡을 쓴 그는 병실에 돌아오자바람으로 작가 김정춘과 밤새 가사밀착작업을 하여 노래를 완성하였다.

독특한 선률형상에 박력있는 리듬을 타고 기세차게 울리면서 음악적고조로 락천적인 병사들의 생활감정을 열정적으로 구가한 그의 처녀작 《가마마차 달린다》(1960년)는 공연무대에 오르자마자 병사들의 열렬한 박수속에 재청을 받군 하였다.

이를 계기로 나라에서는 그를 당시의 평양음악대학 작곡학부에서 공부시켜 전문작곡가로 내세워주었으며 주체61(1972)년 11월에는 도이췰란드에서 열리는 세계음악가대회에 대표로 참가하도록 해주었다.

생활을 뜨겁게 감수하라

설명순은 군인이였지만 예술적감수와 함께 생활정서가 남달리 다감한 사람이였다.

그는 낚시질을 몹시 좋아하여 휴식전날이면 밤늦게까지 준비하군 하였다. 그의 안해가 몇마리 잡지도 못하면서 뭘 그렇게 열성껏 준비하는가고 물을 때면 그는 물고기보다 더 큰걸 잡으려 한다고 말하군 하였다고 한다.

한번은 보통강반에서 낚시질을 하던 그가 갑자기 《잡았다!》고 소리를 쳤던 일이 있었다. 빈 낚시코를 들고 기쁨에 넘쳐있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의아함을 금할수 없었다. 강물에 비껴드는 불밝은 평양의 모습에서 그는 자기가 그처럼 찾던 곡상을 발견하였던것이다. 그날 그의 친구가 수확이 있는가고 묻자 그는 자기는 낚시질을 하면서 일거량득하였다고 말하였다. 정말로 그는 고기만 낚은것이 아니라 가요 《평양은 나의 심장》(김두일 작사, 1983년)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선률도 낚아내였다.

이처럼 그는 순간도 창작적사색을 멈추지 않고 생의 전 기간 《초소에 수령님 오셨네》(신전 작사, 1968년), 《말해주리 병사의 사랑을》(안호근 작사, 1986년) 등 백수십편의 명곡들을 내놓았다.

그가 창작한 노래양상은 실로 다양하였다. 힘찬 구령소리와 같은 군가가 있는가 하면 깊은 서정의 노래도 있고 아름답고 밝은 정서의 노래가 있는가 하면 민요풍의 건드러진 노래도 있다.

언제인가 사람들이 어떻게 노래가 모두 명곡으로 될수 있었는가고 물었을 때 설명순은 우리의 생활은 보람차고 아름다우며 사람들의 정신세계도 숭고하다, 문제는 작곡가가 이것을 얼마만큼 뜨겁게 감수하는가 하는데 있다고 말하였다.

혁명송가와 더불어

수많은 명곡들을 창작하여 쟁쟁한 작곡가로 이름날리던 설명순은 늘 가슴을 무겁게 하는 죄책감으로 모대기고있었다. 그것은 우리 인민들의 념원을 담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에 대한 전인민적송가를 창작하지 못하고있는 자책감이였다. 당시 1990년대중엽으로 말하면 우리 인민이 위대한 장군님 의 령도아래 겹쌓이는 시련과 난관을 뚫고헤치며 이 땅우에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새 력사를 창조해가던 격동적인 시기였다.

그는 송가창작을 위해 위대한 장군님 의 령도자 욱이 새겨져있는 최전연초소들과 방방곡곡의 공장, 농촌들을 찾고 또 찾았다.

그 나날 그는 위대한 장군님 의 위대성과 업적을 칭송하고 오직 그이만을 굳게 믿고 따르려는 우리 인민의 흠모의 마음을 담은 선률을 고르고골랐다.

마침내 장중하고 숭엄하면서도 밝고 환희적인 독특한 양상으로 관통되여있는 《 김정일 장군의 노래》(신운호 작사)가 창작완성되였으며 주체86(1997)년 4월 9일 처음으로 공개되였다.

노래는 나오자마자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널리 애송되였으며 위대한 장군님 을  높이 모시고 따르는 우리 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류의 한결같은 마음을 가장 높은 예술적경지에서 훌륭히 구현한 시대의 국보적명작으로, 영생불멸의 혁명송가로 되였다.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 김정일 장군의 노래》는 수많은 공연무대들에서 높이 울려퍼지였으며 미국 뉴욕의 이름있는 음악극장에서도 뜨거운 격정속에 연주되였다.

삼지연관현악단 극장에는 10여명의 우리 나라 음악명인들의 초상이 전시되여있는데 거기에 설명순의 초상을 형상한 미술작품도 있다.

우리 나라의 관록있는 공훈국가합창단에서 아들 설태성이 작곡가로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가고있다.

함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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