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대천의 원쑤 일제의 죄악을 고발한다 // 조선의 쌀을 닥치는대로 략탈한 날강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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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312회 작성일 19-12-24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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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1월 27일 민주조선

 

    불구대천의 원쑤 일제의 죄악을 고발한다

 조선의 쌀을 닥치는대로 략탈한 날강도무리

 

지난 세기 전반기 조선을 비법적으로 강점한 일제는 야만적인 식민지폭압정치를 실시하였으며 우리 나라의 풍부한 자원을 닥치는대로 략탈해갔다. 특히 일제는 조선에서의 쌀략탈을 식민지경제략탈정책의 가장 중요한 고리로 삼고 이를 추진시키는데 미쳐날뛰였다.

일제는 본토에서의 부족되는 쌀문제를 조선에서 쌀을 대량적으로 략탈하여 푸는것으로 정책화하고 그 실현에 달라붙었다.

1913년 2월 《조선미곡검사규칙》이라는것을 공포한 일제는 쌀에 등급을 정해놓고 우리 인민들로부터 헐값으로 마구 략탈해갔다.

일제는 조선의 쌀을 대규모적으로 략탈하기 위하여 중국 동북지방에서 썩은 좁쌀을 대량적으로 조선에 수입하였다. 이것은 조선농민들의 쌀독에 남아있는 한두되의 비상미마저도 미잡곡교환의 명목으로 모조리 긁어가기 위한것이였다. 이러한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일제가 끌어들인 좁쌀은 1912년-1919년사이에만도 2만 8 000석으로부터 91만 6 000석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일제는 조선의 쌀을 더 많이 략탈하기 위하여 우리 인민에게 보리를 비롯한 잡곡과 감자류를 먹을것을 강요하였다. 이것 역시 우리 인민의 주식물소비성경향을 강제로 없애고 쌀을 더 많이 빼앗아낼것을 목적한것이였다.

일제의 악랄한 쌀략탈책동으로 하여 우리 나라는 1910년대에 벌써 일제의 쌀공급기지로, 쌀략탈시장으로 완전히 예속되였다.

1920년대에 들어와 일제의 쌀략탈책동은 더욱 악랄해졌다.

1910년대 후반기 일본에서는 계속되는 흉년으로 쌀생산과 소비사이의 모순이 첨예화되였다. 반면에 도시인구는 증가되기만 하였다. 결국 쌀부족현상이 심해졌으며 이것은 1920년대에 이르러 더욱 격화되였다.

쌀부족으로 인한 정치경제적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일제는 《산미증식계획》이라는것을 내놓고 조선에서의 쌀략탈을 본격적으로 감행하였다.

일제는 1911년에 50만석, 1914년에 230만석의 쌀을 략탈하였다면 1931년에는 근 1 000만석을 략탈하였다. 이 수자는 《산미증식계획》의 감행후 일제의 쌀략탈이 얼마나 우심하게 진행되였는가를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일제에 의한 가혹한 쌀략탈은 조선인민을 극도의 기아와 빈궁에 몰아넣었다. 일본인들자신도 《궁민 또는 화전민의 대부분은 매년… 춘궁(보리가 익기 전), 추궁(벼가 익기 전)시에는 나쁜 곡식마저 얻을수 없어서 야생나무, 과실, 나무눈, 풀뿌리 등을 먹으며 어떤 지방에서는 흙을 먹는자까지 있다.》라고 자인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사태의 원인이 《조선에서는 일반적으로 부의 정도가 낮으며 빈곤한자의 수가 많다》는데 있다고 떠벌이면서 저들의 죄과를 은페하기 위해 갖은 교활한 술책을 다 꾸며댔다.

일제의 쌀략탈은 중일전쟁을 도발한 1937년 7월후 절정에 달하였다.

일제는 급속히 증대된 전시량곡수요량을 충당하기 위해 조선농민들에게 《량곡공출》제도를 강요하였다.

일제는 《량곡공출》을 강요하기 위한 기구적조치로서 1939년 9월 《조선미곡시장주식회사령》을 공포하고 독점적인 량곡략탈회사로서의 《조선미곡시장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조선미곡배급조정령》을 발포하였다.

일제는 《량곡공출》을 실행하는데서 강도적인 방법에 매여달리였다.

일제는 《량곡공출》을 군청과 면사무소 관리들은 물론 경찰, 헌병 등 저들의 폭력기구를 총동원하여 협박과 위협과 공갈의 방법으로 강요하였다. 또한 《량곡공출》량을 보장하기 위하여 농촌마다 중세기적련대책임제를 설정하였으며 《공출》을 거의 무상으로 강요하였다.

일제가 강요한 《량곡공출》제도는 조선인민을 최대의 기아와 빈궁속에 몰아넣었으며 우리 나라를 참혹한 기근지대로 전변시켰다.

일제강점말기 우리 나라가 얼마나 심한 인위적기근지대로 되였는가는 이 시기 산야의 소나무들이 하얗게 변모되고 이른 봄 고사리뿌리, 풀뿌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산과 들을 뒤덮은데서 잘 알수 있다. 또한 파충류나 량서류 등이 중요한 식용물로 되고 소학교 학생의 70~80%가 점심을 가지고 다니지 못했던 사실 등이 잘 말해주고있다.

조선에서 감행된 쌀략탈만행은 우리 나라의 귀중한 자원을 깡그리 략탈하기 위해 미쳐날뛴 일제의 만행가운데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하는것은 력사의 중죄인, 전범국가인 일본이 국제사회앞에 지닌 어길수 없는 법적, 도덕적의무이다.

우리 인민은 과거 일제의 범죄적만행들을 한시도 잊지 않을것이며 죄악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고야말것이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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