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갱생으로 전진하여온 력사 (13)  전후 페허우에서 일떠선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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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44회 작성일 21-06-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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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력갱생으로 전진하여온 력사 (13)

 전후 페허우에서 일떠선 평양

 

(평양 6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

주체42(1953)년 7월 전쟁이 끝난 후 우리 나라의 수도 평양은 재더미만 남은 페허로 되였다. 침략자들은 전쟁 3년간 평양시에만도 인구 한사람당 한개이상에 달하는 42만 8 00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였다.

전후에 우리 인민은 수도를 복구건설하기 위한 사업에 한사람같이 궐기해나섰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53년 7월말 내각전원회의를 여시고 도시들을 현대적으로 복구할데 대하여서와 특히 영웅도시 평양시를 웅장하고 아름답게 건설할데 대한 내각결정 《평양시복구재건에 관하여》를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평양시복구건설은 1954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였다.

전체 평양시민들과 학생들, 인민군군인들은 《피로 지켜낸 영웅도시 평양을 땀으로 복구개건하자!》, 《우리의 수도를 더 아름답게 더 빨리 건설하자!》라는 구호밑에 조국해방(1945. 8. 15.) 9돐전으로 공사대상들을 일떠세우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섰다.

평양시복구건설에서는 매일 과제를 2배, 3배 최고 5배로 초과수행한 위훈자들이 수많이 배출되였다.

건설자들의 애국적열의와 헌신적투쟁의 결과 대상공사들이 70일동안에 완공되였다.

평양역으로부터 모란봉에 이르기까지 대통로가 건설되고 평양의 중심에 넓은 광장이 형성되였다. 그 량켠에 웅장한 종합청사가 일떠서기 시작하였으며 여러 중앙기관의 건물들이 준공되였다.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수십개의 각급 학교들이 복구건설되였다. 륜환선거리들이 형성되고 여러 문화기관과 보건기관, 살림집외부공사도 끝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54년 8월 12일 평양시 한복판에 자리잡고 형성된 중앙광장의 개통식에서 몸소 붉은 테프를 끊으시고 건설성과를 치하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담아 이 광장을 김일성광장으로 부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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