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벨사유(Versaille) 궁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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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다조선인동포
임진왜란 (1592)과 곧이어 일어난 병자호란으로 조선왕조인민들은 풀뿌리로 하루 세끼를 때웠다.
충청도 젊은 청년이 굶주림에 못 이겨 조선탈출을 감행하였다. 오로지 짚신 한 짝 신고 머나먼 길을 떠났다.
중국대륙을 건너 중앙아시아를 건너 도착한 곳이 프랑스 파리이였다.
그 때 프랑스 왕 루이14세는 벨사유궁전을 짓고 있었다.
우리의 충청도 '떡쇠'는 힘 하나는 좋았다. 운 좋게 벨사유궁전건설 노가다로 들어갔다.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조선청년떡쇠가 메일 밤 왕비의 처소를 출퇴근한다는 소문이였다.
루이 14세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참다못한 루이 14세가 우리의 떡쇠를 불러 국문을 하였다.
"네 이놈! 어찌하여 이런 해괴망측한 소문이 나오느냐! 대관절 내 마누라와 뭔 사이냐!!"
우리 떡쇠가 솔직히 대답하였다.
" 벨사이유~ 어쩔람감유?~~ "
이리하여 그 궁전의 이름이 '벨사이유 궁전' 이라 불리였다는 '전설따라 삼천리'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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