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벨사유(Versaille) 궁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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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80회 작성일 23-03-31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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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다조선인동포 



임진왜란 (1592)과 곧이어 일어난 병자호란으로 조선왕조인민들은 풀뿌리로 하루 세끼를 때웠다. 


충청도 젊은 청년이 굶주림에 못 이겨 조선탈출을 감행하였다. 오로지 짚신 한 짝 신고 머나먼 길을 떠났다. 


중국대륙을 건너 중앙아시아를 건너 도착한 곳이 프랑스 파리이였다. 


그 때 프랑스 왕 루이14세는 벨사유궁전을 짓고 있었다.  


우리의 충청도 '떡쇠'는 힘 하나는 좋았다. 운 좋게 벨사유궁전건설 노가다로 들어갔다.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조선청년떡쇠가 메일 밤 왕비의 처소를 출퇴근한다는 소문이였다. 


루이 14세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참다못한 루이 14세가 우리의 떡쇠를 불러 국문을 하였다. 


"네 이놈!  어찌하여 이런 해괴망측한 소문이 나오느냐!  대관절 내 마누라와 뭔 사이냐!!"


우리 충청도 떡쇠가 충청도 사투리로 답했다. 


" 뭔 사이라뉴~?  벨사유 아뉴~  "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 입을 통해 '벨사유~ 벨사유~" 라는 말이 구전 되어 오늘날 


그 궁전의 이름이 '벨사유 궁전' 이라 불리였다는 '전설따라 삼천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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